괜히 어두육미가 아니라는...짭쪼롬한 저 사진 속
페이지 정보
작성자 afurojoo
작성일25-06-17 10:53
조회1회
댓글0건
관련링크
본문
괜히 어두육미가 아니라는...짭쪼롬한 저 사진 속 무와 함께 먹으면 밥 한 공기 뚝딱 가능합니다.고기들이 듬뿍 들어있어서 양에 놀라고, 맛있어서 놀라고.여의도 일식집 노조미 전경입니다.0507-1409-7614노조미 사시미의 사시미 플레이트봄은 그저 스쳐지나가고 날이 이젠 여름이에요.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은행로 3죽의 경우는 계절과 수급재료에 따라 매번 상이하니 참고하세요.소화에 좋은 시원한 매실차와 직접 만드신 고구마양갱 한 조각 먹으니 개운하고 좋았어요.️️생선을 튀겨 생선까스로 만들고, 유린기 소스랑 합쳐준 메뉴예요.ELLY입니다 :)메인 사시미 플레이트 / 꼬막&누룽지 / 해산물 모듬장매장 입구를 기준으로 가운데는 모두 입식 좌석인 홀로 되어있어서 가볍게 식사하시기에 좋아요.기본 2-4인 룸부터 최대 40여 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한 룸들이 있으니 상견례, 가족모임은 물론이며서울 영등포구 은행로 3 삼희익스콘벤쳐타워 B113호개별 세팅이 되어있는데다 개인별 죽과 샐러드가 서브돼요.조금씩, 하나씩 오는 것 보다 이렇게 큼직한 플레이트들이 여럿 나오니 한 상 푸짐하고 좋더라구요.하나하나 준비된 메뉴가 나오는데요.그리고 함게 나온 꼬막무침&누룽지 / 해산물 모듬장이예요.백합탕 / 스지양지 / 생선 유린기 / 도미머리조림저는 도미머리조림을 이 곳, 여의도 일식집 노조미에서 십 여 년 전에 데뷔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.직접 보고 맛봐야 아실거예요, 퀄리티가 좋아요!찬 음식을 먹다가 중간 딱 좋은 타이밍에 나와주는 백합탕은 속 달래주기에 그만이죠.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모임가지느라 오랜만에 여의도 일식 먹으러 다녀왔어요.주인공이 늦게 나와야한다는 법은 없지요.다른 사이드메뉴들이 화려하게 나오는 것 보다, 메인이 잘 나오는 곳을 좋아하는데요.꼬막에 누룽지를 토핑처럼 얹어먹는 맛이 끝내주던데 말예요ㅠㅠ플레이트 가운데에 있는 계란을 잘 섞어 찍어드시면 돼요.저는 매운탕보다는 또 지리파여서 아주 좋아요.따끈하게 고소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던 스지양지는 3인분 양이 꽤 되어서 더욱 맘에 들었어요.(아시죠, 유명인들 입맛 까다로운거. 좋은거 많이 드셔서 어지간하면 버티기 어려운 여의도땅입니다 ㅎㅎ)식사메뉴로 나오는거지만 대구 듬뿍.역시 튀김은 갓벽해요!노조미 사시미 : 개인셋팅가장 최근에는 신현준님이 다녀가셨더라구요.모두 좌식으로 되어있는 룸이 꽤 많아요.뭔가 일식 코스요리에 빠지면 서운한 도미머리조림.식사와 후식 : 대구지리탕 / 날치알밥 / 매실차 / 수제 고구마양갱여의도 단체회식장소로 손색없다죠.여의도 일식 노조미프라이빗한 식사가 가능한 룸이 90% 이상이고, 음식이 정갈하게 잘 나와 유명한 연예인분들, 국회의원분들의 모임에[박도 기자]▲ 이희호 여사 6주기 기념식장ⓒ 박도존경하는 당신에게 하느님과의 대화, 가장 천한 곳에서 그리고 외로운 곳에 처함으로 겸손의 미덕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. 또 겸손뿐 아니라 고통을 체험했기 때문에 남의 고통을 내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참 귀한 것이 될 거예요. 보복을 부인하신 예수, 또 바울 사도도 "아무에게도 악을 갚지 말라"(로마 12:17)고 하셨어요. 이 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을 돌려 대는 것은 대단한 저항으로 박해자의 양심을 부끄럽게 하는 것인 줄 생각합니다. 오직 악은 악으로써 이길 수 없고 선으로만 이긴다는 것을 우리는 다 같이 알아야 할 것으로 믿어요. "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 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라"(로마 12: 20)고 가르친 이 같은 사랑을 생각하고 체험하시기 바랍니다." (1977. 9. 25.) - 이희호의 <내일을 위한 기도>와 <옥중 서신 2>에서. 위 글은 이희호 여사가 남편 김대중씨가 '1976. 3 ․ 1 민주 구국 선언'으로 정식 입건, 대법원에서 징역 5년 형을 받고 진주 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 보낸 편지의 일부다. 이희호 여사는 남편 김대중씨가 교도소에 있을 때 거의 날마다 옥중 편지를 보낸 바, 필자가 그분의 저서 <내일을 위한 기도>와 <옥중 서신 2>에서 이를 찾아 그 일부를 전재했다.지난 6월 10일은 이희호 여사 6주기였다. 나는 2004년 2월 29일 일선 교단에서 물러난 뒤, 곧장 강원도 산골로 귀촌을 하여 20여 년 째 농사 꾼, 시민 기자, 작가로 지내고 있다. 그때 40여 년 살았던 생활 근거지 서울을 떠나면서 가능한 서울을 자주 찾지 않기로 작정했다. 하지만 서울에서 고교, 대학, 그리고 교직 생활을 한 탓으로, 그 작심이 무너질 때가 많았다. 그런 가운데 지난주에는 서울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. 지난 6월 10일(화) 이희호 여사 6주기 기념일과 12일(목) 대한 민국 광복회 회보 지령 500호
댓글목록
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.